교양 이야기/정치 이야기

1283. 정치: 교학사 교과서(1.9 목)

영일만2 2014. 1. 9. 14:13

 

1283. 정치: 교학사 교과서(1.9 목)

 

-이번 칼럼요약-

2014년 1월 9일 목요일 교학사 교과서 채택파동에 대한 이야기를 써봅니다.

 

-본 문-

1. 파주한민고만 남았네!

1.9 목요일로 청송여고가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하면서 이젠 파주 한민고만 남게 되었다.

한민고는 내년 3월 개교예정인 학교로서 국방부가 자금을 지원한 학교인데, 이학교도

최종 선택은 개교이전에 확정하겠다고 하여 여운을 남겨둔 상태여서 문제가된 20여개교가

철회하였고, 아마도 철회하게 됨으로 최종적으로 교학사를 채택한 고교는 없을 것으로 알려진다.

 

2. 무엇이 문제인가?

-교학사 교과서는 강화도 조약에 대해 개혁파의 주장과 고종의 긍정적 인식으로 체결되었다고 서술,

이는 강화도 조약은 조선에 국교수립을 강요한 불평등 조약이라고 기술한 후소샤교과서보다 훨씬

일본 측 입장을 반영한 기술이란다.

-후소샤 교과서는 "한국 병합후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 철도, 관개시설을 정비하는등 개발을 행하고"

라고 하였으나 교학사 교과서는 "1900년대 초에 개통된 철도는 일본으로 쌀과 면화등을 실어 나르고

철도를 이용하여 먼거리여행도 가능해졌다...이에따라 새로운 공간관념이 형성되었다"

한국인이 일제시대를 이렇게 까지 미화찬양한다며, 일본언론도 깜짝놀라서 보도한다고 함

 -1998년도에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취임하여 야당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처음으로이루어졌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시장경제의 원리를 보다 과감하게

도입하여 경제의 선진화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대북 유화 정책을 추진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미사일과 핵을 개발하도록 하는 기회를 주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3년에는 노대통령 취임, 노정부는 참여 민주주의표방 권위주의 청산노력, 그러나 법치규범 약화

비판도 받고, 국회에서 탄핵받음, 노정부가 밀어붙인 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은 위헌판결받음.

대북 유화책이 두드러져 안보에 소홀했다는 비판받음

-2008년 이명박 대통령취임, 안보를 보다확실히 한다는 입장분명히 하고 경제선진화 목표 가짐.

미국,유럽등 경제위기 있었지만 한국은 금융위기를 비교적 잘극복하고 금융시장 안정을 찾음

한국은 2012년 20-50클럽에 세계 7번째로 들어가게됨

-오류나 편파적으로 기술한 대목만해도 298건에 이른다는 주장이 진보성향의 역사단체에서 제기됨.

-하일식 연대교수는 이교과서는 우리민족 문화의 기원을 황하문명에서 찾고, 일제하에서 근대화가 되고,

해방이후에는 미국에 의존했다는 역사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며 사대주의 타율성론등 식민사관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이준식 연대교수는 "이교과서는 이승만을 위한 교과서"라며 이승만이름이 42회등장, 김구사진 한장,

윤봉길 사진없고, 안창호는 본문 등장하지 않으며, 이승만에 대해 국민적영웅으로 지침.

 

3. 한국사 교과서

현재 국사편찬 위원회의 검정심의를 통과한 8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있다.

 

4. 서남수 교육부장관

교육부내 교과서 편수를 전담하는 조직을 둬야 한다고 한다. 한국사뿐 아니라 전체 교과서를

검증할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싶다고 하였는데, 이는 북한이 세계유일로 국정교과서를 쓴다는데,

북한을 따라 남한도 국정교과서 시스템으로 가자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5. cbs 김현정 뉴스쇼(새눌 하태경의원/민주 배재정 의원 대담)

두사람의 주요 의견

새눌 하의원=> 친일파 낙인찍기에 교학사가 완패함,

철회 강요하는 위압적 시위 안된다. 교과서 편수체제는 유아적 발상이다.

논란되는 근현대사 부분을 축소하자. 교학사 낙인은 *묻은개 겨묻은 개 나무란 셈이다.

 

민주 배의원=>교학사 교과서 치명적 오류가 여전하다. 반대를 외부개입으로 보는 건 불통.

국정교과서 주장은 유신회귀다. 논란 부분 배제한 교육? 진실호도다.

"교학사 오류, 7좀에 비해 어마어마하다"

-식민지 수탈을 수출로 잘못 써왔었다. 지적하니 그페이지만 수정하고 다른 페이지는 그대로 뒀다.

 

6. 국정(국가가 독점해서 교과서 만들어 학교에 보냄/국사편찬위원회 편찬)과

검정(각각 출판사에서 교과서 발행 학교와 학생이 선택)의 차이

-해방이후 검정제도를 유지하다가, 1974년 유신이 시작되고 나서 국정으로 역사교과가 바뀜

-유신끝나고 세계사는 검정으로 바뀜, 한국근현대사가 김영삼정부때, 한국사가 노무현 정부때

검정으로 전환됨.

(1.8 cbs라디오 정관용/ 부천여고 조한경 선생 의견)

 

 

2014.1.9 칼럼지기

*******************정치: 교학사 교과서 세부지적 내용 참고/꽃보다 독도 카페 참고함(1.9 목)*************************

Q. 교학사 교과서가 뭐가 문제라고 그러냐. 
A. 역사관도 문제지만 기본 자료부터 문제가 있었음. 솔직히 다른 교과서였다면 검정기준에도 미달했을 듯. 
임시방편으로 고치긴 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있는 상태야.. 
* 참고로 인터넷 출처논란으로 시끄러웠던 교학사 출처들은 이북링크 395p~400p에서 볼 수 있음. 

교학사 교과서, 문화재청 인용 자료 37%가 엉터리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732087&ref=S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자료사진 출처 비교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53988 
(인터넷출처사진 인용수 : 교학사 327건 비상교육 30건 지학사 1건 천재교육 0건 리베르 0건 미래엔 0건 두산동아 0건) 

민족문제연구소 "교학사 교과서 오류 400개" 인터넷 사이트 짜깁기 의혹도 
http://www.segyefn.com/articles/article.asp?aid=20131216024894&cid=0501030000000?OutUrl=naver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자료, 인터넷 포털서 인용” 다른 교과서는 공신력있는 출처서 거의 인용 
http://www.sisa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188 
  

위와 같이 엄청난 지적 후 일부 수정되었으나...그 사이 아래와 같은 해프닝이 있었지.... 
교과서 고치고 싶으니까 자료 출처 좀 알려 달라고 교학사 측에서 문제 제기한 곳에 요청함 ㅋㅋㅋㅋ 
이렇게 함량 미달인 사람들이 교과서를 만들었으니, 말이 많을 수 밖에 없었지. 


“교과서 고치게 자료 출처 알려달라” 교학사 측, 민족문제연구소에 요청 
한국사학회 7곳 “시험에도 불리”오류 652건 또 지적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192250045&code=940401 
(- 교학사 교과서는 지난 8월 말 검정통과 직후부터 수백건의 오류가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끊임없이 지적됐다. 
하지만 교학사는 3개월여의 자체 수정 기간에도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교과서 배포를 코앞에 두고 문제 지적 단체한테 자료를 요청한 셈. 
- “국가 시험을 몇 번 출제해본 경험상 교과서 8종 중 5~6종 정도에 있는 내용이면 출제할 수 있는데, 
교학사 교과서는 워낙 달라 학생과 교사들이 애를 먹을 것이다. 다른 교과서를 갖다놓고 같이 공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 



Q. 김구,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했다는데 그런 항목 없다. 날조와 유언비어다. 
A. ㅇㅇ 맞아. 김구 얘기는 2008년에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이 만들었던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에 있는 내용임. 
'그랬던' 뉴라이트 교과서포럼 간부출신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등이 저자로 참여해서 문제가 된거야.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923009008 
(교학사판은 뉴라이트 소속인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등이 저자로 참여했다. 
2008년 뉴라이트 성향 교과서포럼이 대안교과서를 낸 적이 있지만, 뉴라이트 인사가 참여한 
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안중근은 다른 교과서들은 12~13줄로 서술하는데 교학사는 1줄로 끝냄. 
더구나 교과서 색인에서는 누락됨. (이토 히로부미도 있었는데...) 
그 점을 문제삼으니 단순한 실수였다고 수정하겠다고 해명하기도 했지. 
이렇게 처음부터 오류 투성이인 교과서라 관련 내용들이 사람들한테 거론되는 거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03205 

교학사 교과서 기존 뉴라이트 교과서보다 우편향적 기술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606856.html 

* 참고 :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에 실렸던 김구에 대한 설명 중 문제된 부분 
민왕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 상인을 군인으로 오인하여 살해하였다.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항일테러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 
http://cafefiles.naver.net/data40/2009/1/13/202/t_free_1846112_ray_sen.jpg 

 

교학사 친일용어 금지 권고 어겼다 (교육부가 내린 권고임)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2328&page=1 

“이승만·박정희 지나친 미화, 친일행위는 축소… 부적절한 교과서” 
http://nurisaem.or.kr/bbs/view.php?id=sub0501&no=3563 

교학사 교과서 '일본 헌법' 우월성 강조 내용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G31&newsid=01931926603039504&DCD=A00703&OutLnkChk=Y 
(일본 헌법 조항 중에는 ‘일본 신민은 법률에 따르지 않고 체포나 감금, 신문 및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등의 
 근대적 입헌군주제를 나타내는 조항을 실어 세 나라의 헌법 조항을 비교했다. 이에 이은 설명글로 
 “대한국 국제는 황제의 절대적인 권한을 주로 서술한 반면, 대일본 제국 헌법은 법률 제정과 국회 개성 등 
 입헌제 국가의 기반을 확립했다”고 서술했다.) 

‘최종 승인’ 교학사 교과서 내용 살펴보니 친일·독재 미화 그대로… 더 우편향된 기술도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3121012123223328&outlink=1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동아일보사주 김성수를 "일본식 성명 강요를 거부하고, 
일제가 제의하는 작위와 귀족원 의원직도 거절하였다" 라며 친일파가 아닌 것처럼 써놓음ㅋ 
이 부분이 친일파 미화로 논란이 되니 경영자로 활동하였다고 수정함. 292p) 


역사학계 “발명 수준” 야권 “우편향”…교학사 교과서 오류 비판 확산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911008014 


아래 링크는 기사는 아닌데 교학사 pdf 버전이 캡쳐되어 있어서 이해를 위해 가져와봤어 
http://impeter.tistory.com/m/post/view/id/2361 

(245p) 
일제는 1920년대부터 한국으로 "자본진출"을 본격화하였다 -> 보통은 침탈로 표현 ㅋ 
한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큰 이익을 올렸다 -> 다른 교과서는 착취라고 표현. 
회사령 철폐는 한국인에게도 기회가 되었다. -> ..... 

- 일제가 주장하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 
일사늑약 -> 일사조약 
한일병탄 -> 한일병합 

(290p) 
 1923년 관동 대지진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는 참사를 당했다. 
-> 일본 우편향 교과서로 논란이 된 후소샤 교과서에서도 이것보다 자세하게 서술함. 
조선인들이 왜 학살당했는지 알려주지 않고 있음.. 

(280p) 
1930년대 이후 만주로의 농업 이민과 일본으로의 노동이민이 급격히 증가한 것도 
한국 농촌 사회의 인구과잉과 열악해지는 농촌 경제가 한 원인이었다. 
-> 국사편찬위원회는 "일제의 권력과 지주에 의한 토지수탈 때문" 이라고 서술했던 부분임. 

(249p) 위안부사진설명 
현지 위안부와 달리 한국인 위안부는 전선의 변경으로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 '강제' 라는 말이 없어 수정권고를 받았음에도 수정하지 않음 ㅎ 
http://media.daum.net/politics/president/newsview?newsid=20131003060307282&RIGHT_REPLY=R3 

- 식민지근대화론 : 일제로 인해 조선이 근대화 될 수 있었다는 주장 
- 전민족 친일 공범론 : 일제치하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일제에 협력했다는 주장 

* 식민지 근대화론의 예시 
(278p) 
1930년대의 명동거리 사진. 충남 질소 비료 공장 사진. 수록. 
가로등이 완비되어 있고, 양장의 남녀와 레코드 가게 등이 보인다. 
식민지의 궁핍한 삶과 대조되는 이 풍경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갖게 되었다는 답을 유도하겠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일본이 한국보다 발전되어 있었다는 인상을 주기엔 충분하지. 
한번이면 우연이겠지만 교과서 내내 이렇다는 거..) 

(279p) 
일본 재벌 아베 후사지로의 동진농업주식회사 사진. 동진수리조합사업 상황도 그림. 

(280p)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 도시의 발전도 있었다. 행정 중심의 전통적 도시들과 달리 
1910년대에는 철도교통중심지와 행정 및 교육중심지에서, 1930년대에는 공업중심지에서 
새로운 도시들이 식민지적 요구에 의해 성장하였다. 
식민 도시들은 일제 지배가 지속되면서 교통과 유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하생략) 

일본인들이 살았던 경성남촌의 근대적 도시 사진과 
한국인들이 살았던 경성북촌의 가로등이 없는 사진 비교 수록 및 서술; 

(283~285p) 
그 외 수풍수력발전소, 경성방송국, 조선식산은행, 미쓰코시백화점 등 
일제 자본과 기술로 세운 건물과 시설사진 대거 수록;;; 

(282p) 
- 일제의 지배는 이전과는 다른 생활 규칙과 의식의 변화를 요구하였고, 식민지적 근대 관념을 주입하였다. 
일제는 토지대장과 호적대장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작성하고 지속적으로 갱신하여 재정확보와 통치의 기본자료로 활용하였다. 
근대적(-_-) 규율은 일상 생활까지 확대되었다. 

-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은 시간 사용의 합리화와 생활 습관의 개선을 일제로부터 강요받았다. 
자본주의화의 진전은 더욱 정확한 시간관념을 요구하였다. 학교와 공장은 물론이고 철도, 우편, 전산망 등 
교통과 통신의 발달도 정확한 시간관념을 요구하였다. 
(강요, 수탈의 효율성 같은 말을 넣어서 비판하는 듯 하지만, 결국은 일제가 근대화에 도움을 줬다는 뉴라이트적 서술) 

(283p) 
- 교통의 발달, 전신 전화의 보급으로 새로운 공간관념이 형성되었고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해졌다. 
- 사료탐구 : 일제가 이처럼 근대적인 시간관념을 보급하기 위해 힘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수탈에 힘쓰려고, 이런 대답을 요하는 것 같지만 근대적인 시간관념이 일제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인식을 심어줌) 

(285p) 
탐구활동 : 일제강점기 경제 변화에 대한 역사서술의 차이...라는 명목하에 식민지근대화론 같이 소개 -_- 


* 전민족 친일 공범론의 예시 
(288p) 
일제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굴종과 전쟁에 대한 협력을 요구하였고 강요를 이기지 못한 이들은 이에 따랐다. 
만주사변 이후 일제가 침략전쟁에 계속 승리하며 이를 크게 홍보하자 한국인의 일부는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고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게 되었다. (중간생략) 나아가 종교인의 일부까지도 
일제의 침략전쟁 협력에 동참하였다. 상공업자들 가운데는 일제의 전시호황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친일파 미화 시도 
(278p) 
한국인 상공업자는 경제적 자립이 곧 독립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여겨 상공업 발전에 노력하였다. 
그 결과 대규모의 토착자본이 투자된 경성 방직 주식회사 외에도 (중간생략) 일본 기업과 능히 경쟁할 수 있었다. 
-> 원래 중간에 화신백화점도 있었으나 수정본에서 삭제함. 경성방직은 그대로 뒀다는거ㅋ 친일파를 경제발전인사로 미화. 
(참고 : 화신백화점 회장 박흥식은 악질적인 친일분자로서 1949년 반민특위에 반민족행위자 제1호로 체포된 바 있고, 
경성방직 창업주 김연수 전 회장도 2012년 서울고법에서 친일행위자로 인정됐다) 

 

일본 산케이 "교학사 식민지 근대화론 도입" 칼럼 기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09164 

일본 보수 언론 요미우리 식민지 미화논란 교학사 교과서 소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519729 

"일제통치시대 경제발전 재평가" 교학사 교과서 소개한 요미우리 
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1310/h2013100700071822450.htm 
(요미우리 왈 "교학사 교과서는 한국의 다른 역사교과서와 달리 일본통치시대를 경제발전과 규율개선 등의 면에서 일부 평가했다" 
"일본 식민 지배로 한국에서 회사 설립이 쉬워졌고, 국산품이 강화돼 일본 기업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게 됐다" 기술했다고 보도) 

"교학사 역사교과서, 日 우익세력이 칭송" 
http://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777790&g_menu=050300&rrf=nv 
(일본 지지통신, 재팬타임즈, 산케이, 요미우리 등 일본 신문에서 교학사 역사교과서 소개. 
이들 신문은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대해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를 긍정적으로 묘사', 
 '한국 교과서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찬양한다', '한국의 교학사 교과서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도입', 
'일제강점기를 경제발전 등의 시각으로 기술' 등으로 보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