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있는 이야기/사건&사고&시사

시사: 조계종 통행세, 장개석, 10만명 집단체조, 김명환 구속, 강남서장 대기발령, (6.21 금)

영일만2 2019. 6. 21. 21:41

시사: 조계종 통행세, 장개석, 10만명 집단체조, 김명환 구속, 강남서장 대기발령, (6.21 금)


종교·시민단체들 "조계종, 문화재관람료 불법 징수 사과해야"

입력 2019.06.21. 19:15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불교개혁행동, 종교투명성센터 등 7개 종교·시민단체들은 21일 "조계종은 문화재 관람료 불법 징수를 사과하고 국립공원 입구 매표소를 사찰 입구로 이전하라"고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문화재 관람료는 문화재보호법 제49조 1항에 따라 관람자에게만 걷어야 한다. 문화재 관람료는 국립공원 통행료가 아니다"며 "조계종은 자신들이 국민들에게 행하는 불법 징수행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국립공원 사찰부지 편입 보상' 주장 반박.."매표소도 사찰 앞 이전" 주장
'문화재 관람료' 해묵은 논란…해법 찾을까?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불교개혁행동, 종교투명성센터 등 7개 종교·시민단체들은 21일 "조계종은 문화재 관람료 불법 징수를 사과하고 국립공원 입구 매표소를 사찰 입구로 이전하라"고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조계종은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산하 사찰들이 관람료를 걷는 것에 대한 사과나 불법을 해소할 대책은 내놓지 않고 오히려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고, 보상하지 않으면 사찰소유 토지를 국립공원 지역에서 해제한다고 주장했다"며 "재산권 규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하겠다고 했다"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문화재 관람료는 문화재보호법 제49조 1항에 따라 관람자에게만 걷어야 한다. 문화재 관람료는 국립공원 통행료가 아니다"며 "조계종은 자신들이 국민들에게 행하는 불법 징수행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국토의 용도지정에 따라 보상이 필요한 경우는 종래 용도에 따른 사용이 불가능한 때로, 현재 국립공원 내 사찰지는 종래의 용도에 맞게 사용이 가능하다"며 조계종의 보상 주장을 반박했다.

이들 단체는 "자연공원법은 공원 지정으로 인해 토지를 본래의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경우 (국가가) 토지를 매수하도록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조계종은 매수청구권을 행사하거나 토지보상 미비로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계종은 사찰이 손해를 본 것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서 법상 근거가 없는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조계종의 헌법소원 방침과 관련해 "헌법소원의 제기는 공권력 침해를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하도록 정하고 있어 헌법소원 제기 가능 기간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종료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계종의 주장은 국가에 대한 보상요구와 헌법소원 등의 결론이 날 때까지 시간을 벌겠다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eddie@yna.co.kr

관련 태그

장제스

다른 표기 언어 Chiang Kaishek , 蔣介石

요약 테이블
출생1887. 10. 31, 중국 저장 성[浙江省]
사망1975. 4. 5, 타이베이[臺北]
국적 중국

요약 1928~49년 중국국민당 정부의 주석을 지냈고 1949년 이후에는 타이완의 국민정부 주석을 지냈다. 장제스는 해안에 인접한 저장 성의 비교적 유복한 상인·농민 가문에서 태어났다. 1913~16년, 중국의 공화주의자들 및 기타 혁명가들과 합세하여 중국의 새 총통이며 후에 황제로 등극한 위안스카이에 대항하여 싸웠다.
1925년 이래 혁명군의 총사령관으로 재임하면서 1926년 중국 북부의 군벌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싸워 중국 전역을 장악했으나,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하고 1946년 국공내전이 다시 시작된 후 1949년 중국 대륙을 공산당에게 내주게 되었다. 그는 국민당 잔여부대를 이끌고 타이완으로 건너가서 국민당 지도자들과 함께 중화민국을 건국하고 장기간 통치했다.

장제스 (Chiang Kaishek)

중국의 정치가, 군사지도자

ⓒ Dirrival / wikipedia | Public Domain

본명은 장중정[蔣中正]. 1928~49년 중국국민당 정부의 주석을 지냈고 1949년 이후에는 타이완[臺灣]의 국민정부 주석을 지냈다.

장제스는 해안에 인접한 저장 성의 비교적 유복한 상인·농민 가문에서 태어났다.

군관(軍官)이 되기 위하여 1906년 중국 북부에 있던 바오딩[保定] 군관학교에 입학했고 이어 1907~11년 일본에 유학했다. 1909~11년 일본 군대에 근무하면서 일본군의 스파르타식 규율을 숭상하고 따르게 되었다. 또한 도쿄[東京] 유학시절에 만난 젊은 동료들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조국땅에서 이민족인 만주족을 몰아내자는 결의를 했고 이 과정에서 그는 공화주의 신봉자, 혁명가로 변모했다. 1911년 중국에 혁명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으로 돌아와 청조(淸朝) 정부를 전복시킨 산발적인 전투에 참가했다.

1913~16년에는 중국의 공화주의자들 및 기타 혁명가들과 합세하여 중국의 새 총통이며 후에 황제로 등극한 위안스카이[袁世凱]에 대항하여 싸웠다. 이같은 공적인 활동에 뒤이어 장제스는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1916~17년의 2년 동안 상하이[上海]에 살면서 부정한 금전거래와 관련 있는 비밀결사 청방(靑幇)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918년 국민당의 지도자 쑨원

쑨원의 주요목표는 위안스카이 체제의 붕괴와 함께

쑨원이 소비에트식으로 국민당을 개편하기 시작한 직후인 1923년 장제스는 소련

4개월 뒤 중국으로 돌아와 광둥[廣東] 근처의 황푸[黃埔]에 소비에트식으로 세워진 황푸군관학교

장제스는 황푸 군관학교 출신 장교들의 지원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쑨원의 가장 강력한 후계자였고 공산주의자들의 이같은 위협에 아주 적절하게 대처했다. 그는 강·온 양면작전을 번갈아 써가면서 소련의 지원을 잃지 않는 가운데 중국공산당

한편 장제스는 중국을 통일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1925년 이래 혁명군의 총사령관으로 재임하면서 1926년 중국 북부의 군벌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대규모 북벌을 개시했다. 1928년 그의 군대가 수도인 베이징[北京]에 입성하면서 북벌은 끝났고, 그해 난징[南京]에 그를 정부 수반으로 하는 국민당 주도의 새 중앙정부가 세워졌다. 1930년 10월 그는 유수한 권문세도가이며 친(親)서방 세력인 쑹가메이링

그는 새로운 국민정부의 주석으로서 사회개혁 정책을 굳건하게 지지했으나, 그 정책의 대부분은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가 중국대륙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각 지방의 군벌들을 진압했다기보다는 중립화시킨 것뿐이었고 군벌들은 여전히 그의 권위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농촌의 요새로 퇴각하여 그들 나름의 정부와 군대를 조직한 공산당원들도 또다른 위협이었다. 게다가 1931년 만주사변 이래 중국 본토를 침략할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일본과 전쟁을 치러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공산당을 섬멸하기 전까지는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많은 항의를 받았는데, 특히 공산당에 대한 완전 섬멸이 계속 이루어지지 않아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국민들에게 더욱 굳건한 도덕적 일체감을 심어주기 위하여 장제스는 유교의 국가숭배의식을 부활시켰고, 1934년에는 유교적 도덕을 주입시키기 위하여 신생활운동을 전개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장제스는 시안[西安] 사건

그후 4년 동안 연합군이 가세하기 전까지 중국은 단독으로 일본과 교전했고, 소련을 뺀 연합국들은 1941년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로써 중국은 4강대국의 하나로 승전국이 되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정부는 내부적으로 부패의 징조를 보였다.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하고 이어 1946년 국공내전이 다시 시작되자 그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1949년 장제스는 중국 대륙을 공산당에게 내주게 되었고 이어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는 국민당 잔여부대를 이끌고 타이완

1955년 미국은 국민정부와 타이완 방위를 보장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1972년초 미국과 중국 사이에 관계개선이 이루어지면서 이 협정의 효력과 그의 정부의 미래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1979년 미국은 마침내 중화인민공화국과 전면적인 국교를 수립하기 위하여 타이완과의 외교관계를 끊었으나 그는 그때까지 생존하지 못했다.

1975년 그가 죽자 아들 장징궈

장징궈 (Chiang Chingkuo)

장제스의 아들이자 국민당 정치인

ⓒ Benlisquare / wikipedia | Public Domain

장제스가 공산당에 패배한 이유 가운데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정부 내에 부패가 만연되도록 방관했다는 점이고, 또다른 이유는 그가 외부사정의 변화에 신축성 있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의 지도력은 점점 더 경직되었고 민심의 움직임과 새로운 사고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재능보다 충성심을 더 높이 사게 되었고 조직보다는 개인적인 유대관계에 의존했다. 심복들만을 중용하는 경향은 군인사(軍人事)에도 나타나 많은 재능있는 장교들을 제치고 편협한 보수주의적 장교들이 중용되었다. 지방군벌들을 서로 경쟁시키고 국민당 내의 정적들끼리 서로 싸우게 했다. 그밖에는 미국과의 외교에서 수완을 발휘해 미국으로부터 군사적·외교적·재정적 지원을 받아냄으로써 중국의 최고 지도자 자리를 유지했다. 공산당에 패배한 또다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그가 세운 전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을 점령한 일본군에게 저항하는 데 있어서, 미국제 장비를 갖춘 자신의 군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서 그대신 미국이 결국 일본을 패배시키리라고 기대했다. 그는 중일전쟁이 끝난 뒤 공산당과의 내전에 대비하여 자신의 군대를 아껴두었다가 공산당을 일거에 격멸시킨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실제 내전의 단계에 들어가자 이같은 전략은 역효과를 냈다. 그가 일본의 침략에 대하여 수동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지도자의 위신과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버린 반면, 중국공산당은 일본에 대항하여 맹렬히 싸움으로써 국민의 신임을 얻었다.

그의 군대는 중국 남서부지역에서 빈둥거리면서 놀았기 때문에 사기와 전투력이 떨어진 반면, 중국공산당군은 중국 국민의 감정에 호소하면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나가는 동안 대규모의 정예군대가 되었다. 또한 그는 중국사회를 20세기로 진입시키기 위해 필요한 폭넓은 사회·경제 개혁을 이룩하는 데 있어서 보다 높은 안목과 일관된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대륙을 잃는 결과를 가져왔다. 1927년 국민당에서 공산당원들을 몰아내고 그후 지주 및 상인 계급과 밀착관계를 유지해왔으므로, 학대받고 궁핍한 일반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억압하는 보수적 노선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농민들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나라였다. 중국공산당의 승리로 입증된 바와 같이 중국 농민들이 공산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강력한 중앙정부가 수립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현대 중국의 통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

10만명 집단체조..시진핑 맞춤형 공연 '불패의 사회주의'

성문규 입력 2019.06.21. 20:34 수정 2019.06.21. 20:56

         

삼지연 관현악단 등 3대 악단 첫 동시 공연

동영상 서비스가 종료되어 해당 콘텐츠를 재생할 수 없습니다.


[앵커]

북한은 시진핑 주석을 위해 1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집단체조와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공연제목은 '불패의 사회주의'라는 이름이었는데 시 주석을 위한 맞춤형이었습니다. 삼지연관현악단 등 북한 3대악단이 한 자리에 모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성문규 기자입니다.

[기자]

북·중 정상 부부가 10만 관중의 박수와 함성 속에 등장합니다.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은 관중이 흔드는 북한 인공기와 중국 오성홍기로 온통 붉은색입니다.

대형 공연 제목은 '불패의 사회주의'

경기장 곳곳에는 시진핑 주석 부부를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렸습니다.

공연은 '사회주의 우리 고향'으로 시작하는 총 4막으로 구성됐다고 중국 인민일보는 전했습니다.

북한 사회주의의 성과를 과시하고 북·중 우호관계를 발전시키자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장 '철벽같은 친선'은 시 주석의 방북을 환영하는 내용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북한은 이 공연을 위해 3대 악단인 국립교향악단과 공훈합창단, 삼지연관현악단을 처음으로 같은 무대에 세웠습니다.

카드섹션에서는 대형 오성홍기를 배경으로 시 주석의 얼굴을 형상화했고, 펑리위안 여사의 대표곡들도 선보였습니다.

이날 행사는 '조·중친선은 영원하리'라는 대형 가무공연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두 정상 부부는 공연이 끝난 뒤 직접 무대에 올라 감사의 인사를 하고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

민주노총, 김명환 구속에 "노동탄압 정부 상대로 전면 투쟁"

입력 2019.06.21. 21:14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1일 김명환 위원장을 구속과 관련, 문재인 정부를 '노동탄압 정부'로 규정하고 총파업을 포함한 고강도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전 위원장들과 함께 선 김명환 위원장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김명환 민주노총위원장이 21일 오전 영장실질 심사를 받기 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작년 5월21일과 올해 3월27일, 4월 2∼3일 등 총 4차례에 걸쳐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집회를 주최하고,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관을 폭행하거나 장비를 파손하고 경찰 차단벽을 넘어 국회 경내에 진입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왼족부터 권영길 지도위원, 김명환 위원장, 천영세 지도위원. 2019.6.21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1일 김명환 위원장을 구속과 관련, 문재인 정부를 '노동탄압 정부'로 규정하고 총파업을 포함한 고강도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법원의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직후 대변인 논평을 통해 "결국 정부는 총노동의 수장을 잡아 가뒀다"며 "더 이상 촛불 정부가 아닌 노동탄압 정부를 상대로 한 전면적이고 대대적인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말을 지나며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해 이미 수립한 투쟁 계획의 세부적인 내용을 다듬을 것"이라며 "6월 울산 전국 노동자대회에 이어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 그리고 민주노총 전 조직의 총파업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국회 개원에 앞서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한 이유는 분명하다"며 "민주노총의 저항을 짓밟고 노동법을 개악하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총을 가둔 노동존중 세상은 없다"며 "(김 위원장을 포함해) 구속된 네 동지 석방시키고 반드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끝내겠다"고 덧붙였다.

ljglory@yna.co.kr

*******************************************************

'버닝썬 사태' 등 잇단 논란에 서울 강남경찰서장 대기발령(종합)

입력 2019.06.21. 20:42

이른바 '버닝썬 사태'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서울 강남경찰서의 서장이 대기발령 조치됐다.

경찰청은 이재훈 강남경찰서장을 대기발령하고 해당 보직에 박영대 총경을 보임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청은 버닝썬 사태 등으로 각종 유착과 비리 의혹이 잇따라 불거진 데 대한 총체적인 책임을 물어 이 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유착 의혹 등 구설수 잇따르자 문책성 인사
서울강남경찰서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이른바 '버닝썬 사태'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서울 강남경찰서의 서장이 대기발령 조치됐다.

경찰청은 이재훈 강남경찰서장을 대기발령하고 해당 보직에 박영대 총경을 보임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청은 버닝썬 사태 등으로 각종 유착과 비리 의혹이 잇따라 불거진 데 대한 총체적인 책임을 물어 이 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버닝썬 사태의 발단이 된 김상교 씨 폭행 사건은 지난해 11월 24일 김씨가 버닝썬을 방문했다가 클럽 직원에게 폭행당하며 불거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역삼지구대 경찰관들이 김씨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과잉대응 논란이 일었고 클럽과 경찰 사이의 유착설이 제기됐다.

실제 버닝썬 측이 미성년자 출입사건 무마를 위해 강남서 출신 전직 경찰관 강모 씨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은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강남의 다른 클럽과 관련한 유착 의혹도 불거졌다.

경찰은 강남 A 클럽의 미성년자 출입사건과 관련해 클럽 측에서 사건 무마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광역수사대 경찰관 1명을 구속하고 강남서 경찰관 1명은 불구속 입건해 수사 중이다.

빅뱅 전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29) 등이 함께 있던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경찰총장'으로 불린 윤모 총경도 강남서 생활안전과장 출신이다.

윤 총경은 승리와 유인석(34) 전 유리홀딩스 대표가 강남에 개업한 주점 '몽키뮤지엄'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반 신고가 들어오자 강남서 경찰관들을 통해 단속 내용을 확인한 뒤 유 전 대표에게 알려준 혐의를 받는다.

윤 총경 부탁을 받고 단속 내용을 확인해 준 강남서 B경감과 수사 담당자였던 C경장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할 예정이다.

또 최근엔 강남서 남성 경찰관이 여성 피의자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서울지방경찰청이 감찰에 착수했다.

kihun@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