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8. 노조: 12.9 총파업 후기 2(최종분/1.3 금)
-이번 칼럼요약-
2014년 1월 3일 금요일 12.9 총파업 후기와 이야기를 생각나는대로 적었습니다.
-본 문-
1. 직위해제
처음부터 강대강으로 나갔다. 특히 어머니의 심정으로 짤라준(?) 최사장의 공이 컸다.
직위해제란 여태까지의 파업으로 봐서는 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서
직위해제한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중징계를 내릴 경우에 써먹었던 사측의
전술이었다.
그런데 12.9(월) 09:00 시간으로 그날 근무조였던 4000여명의 노조원들에게 모조리
직위해제를 시켰다. 그리고 노조 간부들을 고소고발하였고, 그들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게 하였다.
뒤이어 담날근무자들도 그담날 근무자들도, 나는 12.11자로 직위해제 당했다.
12.10 "안녕들 하십니까?"란 고려대 대자보가 나오고, 국민들은 철도 민영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총 8625명이 직위해제를 당했고, 490명에게 중징계를 가정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참여한 직원 모두다 징계위원회에는 회부되나, 경징계(경고, 견책, 감봉)냐?
중징계냐?(정직, 파면, 해임) 그런 차이가 있다.
직위해제를 당한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그래? 집나간 아이 기다리기는 커녕
뒤에서 총을쏴? 그래 갈때까지 가보자! 더이상 뭐가 있겠어? 하는 맘으로
더욱더 편(?)하게 파업을 즐기게(?) 되었다.
2. 노인사망
12.13 석간부터 교통대학생들이 전동차 승무원으로 근무하는데 위험하다는 말이 떠 돌았다.
안전이 우려된다. 우려된다 하는 이야기가 노조를 중심으로 각종 신문과
포털에 떠돌더니 이윽고 정부과천청사역에서 12.15 저녁 9시 2분경에
80대의 여자 노인분이 교통대학생이 승무하는 열차에 끌려가면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사장의 방문을 기다리며 하루이틀 늦게 장례식도 미루기도
하는등 유족층과 야당, 국민들의 항의와 우려속에 국토부와 사측은
학생들의 철수를 결정했고, 그 여백은 군바리로 채우게 되었다.
김명환위원장은 이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사람살자고 파업하였는데,
사람이 죽다니~~~하고. 애석해 했단다.
3. 군바리와 철도
언제부터 군바리가 들어왔을까? 2009년도 부터다.
물론 2008년인가 그때부터 공공기관 파업시 필수요원을 두어야 한다는 법으로
바뀌게 되어서 경찰출신인 허사장이 어떤 파업에도 꿋꿋하게 운행해야 한다고
해서 특전사 군바리들을 교육시키고, 면허를 발급하고, 실제 노선별로 여유시간에
운전연습을 시켰다. 수시로 교육을 시켰다.
대처 영국수상이 광산 노동자의 파업으로 군인을 대체인력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아마도 박통도 만만한게 군바리인 것 같다.
일반 전투사단이나 향토사단, 예비사단등은 한미사령관의 예하에 있으니 빼기가
어렵고, 특전사와 수방사가 우리 지휘체계에 직속되어 있는데,
수방사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여유로운 특전사 군바리들이 수시로 들낙날낙 하고 있다.
그들을 접한 우리 팀장들 왈"의외로 순수하고, 말도 잘듣고, 원칙대로 한다"
"나이가 40대에서 50대 중순까지 중, 상사,준위등이 있는데, 시키면 시키는대로
잘 듣는다고 한다"
4. 대체 인력이 낸 사건 사고
사무소에 대체로 들어온 대체인력이 낸 사고(주로 군바리)에는
부평역에 도착해서 출입문을 열었는데, 스크린도어가 안열렸단다. 당황해서 출입문을
두세번 열었다가 닫았고, 그래도 스크린도어가 열리지 않아서 기관사에게 어떻게 하면
좋으냐며, 부저를 두세번 울렸는데, 그냥 가버렸고, 부개역에서 내린 손님 100여명이
민원을 많이 냈다고 한다.
두번째로 동인천역에 도착하여 인천으로 가는데, 열차감시를 하고 가는데,
술취한 승객이 홈에서 쓰러지다가 안전휀스에 쓰러졌는데, 이것을 보고,
비상변 취급을 해서 조치를 잘취했다고 한다.
세번째로 외대앞에서 반대편 승강장의 출입문을 출퇴근시간에 사람 많을때
열어서 위험했으나, 다행히 다친 사람이 없단다.
그외 대체인력은 대부분 울 사무소나 다른 사무소에 승무하다가 본사나
본부, 각역에 가서 근무하는 간부들이 대부분이고, 작년 여름에 휴일근로 거부로
와서 연습을 열심히(?)한 상황이라서 별 문제가 안된다.
5. 6일짜리 파업인줄 알았다.
위원장 왈 "6일짜리 파업으로 계획했었다"고 하였다.
우리지부장은 3일정도 갈줄 알았단다. 또한 노동부에서는 파업을
못할줄 알았다고 했단다. 그런데 최장기 파업으로 갈수 있었던 동력은 역시나
노조원들의 굳건한 단결력에 있었다. 사실 들어오고 싶은데, 정부와 사측은 퇴로를 주지 않았다.
중간에 15일 사고 났을때나, 26일 저녁과 27일 오전까지 노사협의를 할때라도
약간의 양보하는 안이 나왔으면 아마도, 두말 않고, 들어 갔을 것이다.
우리는 출정식할때 농담삼아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놀다 오자! 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을 훌쩍 넘었다.
크리스마스를 넘어 12.26 조합원 총회에서도 여러 지부들의 의견은 끝까지 가자! 였다.
정부와 사측에서 강하게 나오는데, 뭔가 한개라도 얻지 못하고 들어가면
무조건 박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6. 급박한 시점!
최종 복귀시한을 12.28 00:00으로 최사장이 주었다.
그전날인 12.27 오전 노사대화가 결렬로 이어지고, 저녁에는 국토부에서
공무원근무시간이 아닌데도 등기소 등기를 내더니, 야밤에 기습 면허발급까지
끝내 버렸다.
사실 면허발급 중지를 내세우고 파업을 하고 있던 우리에게는 황당한 사건이었다.
노조에서도 원천 무효를 내세우지만 이미 배는 떠나간 것이다.
명분이 없다! 다들 각 지부장들에게 전화를 하고, 지부장들은 위원장이나 지도부에
연락을 하여 알아보고 파업지속여부를 물을수 밖에 없다.
물론 노조지도부와는 전화통화를 할수 없으니 다른 식으로 했을 것이다.
일부 열차지부가 12.28 들어갔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또 12.29 주축인 용산에 있는 열차지부가 전원복귀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대로 가면 최종 남은 지부들이 완전히 묵사발 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12.28 토요일 서울시청앞 민노총 10만 3차 상경집회가 있었다..
그때 지부장이 안보였다. 위원장 이야기를 들어보니, 각직종의 지부장들을 불러
대화를 하였다고 한다. 다들 균열조짐이 있는 지부들이 있기도 하여,
72시간의 시간을 주면 해결하겠다고 하였단다.
그러던중 12.29(일) 민주당측에서 연락이 오고, 새누리당 김무성쪽에서도 연락이오고,
직접 민노총건물에까지 들어와서 비밀유지를 확약하고, 새누리 최고위, 원내대표,
청와대까지 약속받고 합의서를 들고 파업 철회를 한 것이다.
그사이에 수시로 노조 지도부와 각 지부장들간에는 급박한 연락이 계속 되었고,
지부장과 노조원사이에도 문자, 카톡등이 계속 이어졌다.
7. 국민의 힘이 느껴진 이번 파업
늘 파업은 외롭고 고독한 싸움이다. 왜냐하면 먹고 살만한 넘들이 파업한다!
요즘 취직못해서 애달은 실업자가 얼마나 많은데, 밥그릇 투정이냐? 고 한다.
그래서 여태껏 보면 늘 외롭고 고독한 철도노조원만의 투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국민철도를 지켜주세요" 플랭카드를 들고 서 있으면,
음료수와 과자! 현금, 음료수등이 자동 판매기처럼 쏟아졌다고 한다.
12.22 민노총 침탈때 분노한 시민들을 보았다. 노동자의 성역으로 알려진
민노총 건물이 침탈되는 모습을 ytn으로 실시간 보고 있던 나도 화가 나는데,
열성 노동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내가 그날 본 그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서대문 사거리를 한번에 장악하고,
경찰차를 밀어서 넘어 트리기도 기도하고, 경찰에게 강력한 항의를 하기도 하였다.
혼자 플랭카드를 들고, 경찰앞에서 무언의 항의를 하는 사람도 있고,
도로 한쪽에 플랭카드를 들고, 침묵의 시위를 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2차 상경파업과 3차 상경파업때는 국민들이 더 많았다.
10만명이니 물론 그렇겠지만~~내뒤에만 빼고 세곳의 방향에 학생, 일반인,
직장인등이 와서 열렬히 응원해주었다.
온라인 카페에서는 모금운동을 하여 철도노조에 직접적으로 현금을 보내주기도 하엿고,
집회현장에는 각종 온라인, 오프라인 모임에서 보내준 깔판과 핫펙들이
박스채로 놓여져 있었다.
한겨레 신문의 한개의 면에는 12.28(토) 집회에 전국민이 함께 하자는 홍보광고가
일반 온라인 동호회에서 7백여명이 성금을 걷어서 지속적으로 게재하기도 하였다.
8. 철도야! 철도야!
어찌되었건 간에 현정부에서 모르쇠로 귀를 막고 있으니, 안해주면 그만이다.
내후년인 2016년 개통한다고 한다. 현재 코레일은 경부선 KTX의 흑자로 나머지 노선의
적자를 때우면서 먹고사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알짜배기 중의 알짜배기
강남에서 떠나는 KTX를 따로 떼어내어 적자노선 투성이인 코레일과 경쟁시킨단다.
제정신인가? 코레일이 먹고 살수 있도록 해주고~~, 아니 흑자날수 있도록 해주고~~~,
경쟁체제를 도입하든 말든 해야지~~~경쟁이 아니고 독점이다.
뻔하게 승객들이 분산되어 질줄 알면서도 알짜배기노선을 떼어주고는
서로 경쟁시킨다고? 앞으로 줄줄이 적자노선 폐선과 역사 폐쇄가 이어 질것은 뻔한일
물론 직원들도 대폭 감소하겠지~~~
9. 남의 집 불구경한 필공! 혼자만 살겠단 불참!
남의 집 불구경한 필공!
필공요원들 근무하느라 수고도 했지만 결국 남의 집 불구경했다.
모 동기 사이트에 가니까 우리 파업기간중에 "너 내일 쉬지? 어디가니?"
"어 나 가족들과 어디 놀러가!""아 그래 미안 같이 **놀러 갈려했더니~~"하는 글을 올렸다.
물론 동기 사이트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만남을 가지는 것은 좋은데, 그시간에
사무소등에서는 파업을 하면 집단생활을 주로 하며, 집과도 떨어져서 생활한다.
또한 무노동 무임금으로 돈도 못받으며, 바깥에서 집회와 식사, 불편한 잠자리등을
밥먹듯이 하고 있는데, 공개적인 사이트에서 필공들이 "놀러가자!"고 하는 것은
그들(약 12000여명)과 참여자(8625명)와 괴리감이 느껴진다.
나중에 또 필공자를 만나 대화해보니 그는 "어? 난 파업에 관심없어! 너네들이나 열심히해!"
하는 식이었다. 사실 가고 싶어 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고, 짤리고 싶어 앞장서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참여하고 온 사람입장에서는 상당히 짜증나는 이야기였다.
혼자만 살겠단 불참!
첫날부터 줄기차게 빠진 사람도 있고, 중간중간에 한두사람 합세하더니,
결국 우리사무소도 다섯 사람이 되었다.
누군 하고 싶겠냐만 근무복 입고 열심히 근무하니까 좋겠지?
이시대가 낳은 영웅이 아닌가? 싶다. 알바근무도 했는지 자못 궁금하다!
그들은 연말과 연초에 따끈한 월급으로 후끈하게 지낼수 있으리라 본다.
10. 쌍용역의 진실
JTBC 9시 토론에서 전원택이 언급한 "태백선 쌍용역 역장 1명, 부역장 3명, 역무원 13명이 근무"하는
역은 쌍용역이다. 이역은 승객이 15명인 역에 역무원 17명으로 방만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는데, 사실 왜곡된 사실이다.
승객이 13명인 것은 맞겠으나, 이역은 태백선에 있는 역으로 화물량이 2010년 기준 발송량만 175만톤,
도착량이 21만톤인 여객및 화물취급역이다. 그러니까 역업무는 주변의 시멘트공장의
화물운송이 주업무인 것이다. 입환과 수송을 전담으로 하니 수송역무원이 있어서
인원이 많은 것이다.
11. 8.31 대구역 탈선사고 관계자의 징역 구형
작년 8.31 대구역 탈선사고가 있었다. 이때는 7년또는 10년이상 한곳에 있는 승무사무소
직원들을 순환전보 시키고, 또 시킨다는 본사와 본부의 방침이 있어서 미할당 근무를
안하고 대체인력이 미할당 근무를 하는 시점이었으며, 그당시 여객전무가 대체를 타고 있는
본부직원이었다. 죽은 사람은 없고, 다친사람이 10여명 있었던 사고 였는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있었고 이일로 인해 당시 순환전보는 안한다. 내년 3월에 다시 논의하자! 로
일단락 되었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때 구속 수사가 진행되었고, 엊그제 검찰은 그들 4명(기관사, 여객전무,
관제사, 열차운용팀장)에게 징역을 1년~3년까지 구형하였다.
업무상 과실치상인데 징역을 구형한 것이다.
작년 12.15 일 21:02 정부과천청사역 전동차에 83세의 여자 노인이 끌려가다가 죽음을 당했다.
12.9 총파업때의 이로 이열차의 승무원으로는 교통대 19세 학생이 타고 있었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으로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당장 학생들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하였고,
몇일후 학생들은 집으로 가고, 군인들로 대체되었다.
업무상과실치사였다. 유족측은 사장이 장례식장에 안나온다며 성의있는 조치를 요구하며,
하루 이틀 장례도 미룰 정도였다.
똑같은 대체인력인데, 하나는 업무치상인데 구속되고, 징역을 구형받고,
하나는 업무치사인데 집으로 갔다.
12. 종교계
낼모레인 1.6 천주교정의 구현사제단 수원교구에서 박근혜사퇴를 촉구하는 시국 미사를 올린단다.
그 내용을 보자니 국정원 댓글 이야기와 함께 정당한, 합법적인 파업을 하는 철도 노동자 탄압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전에 볼때는 남의 일처럼 들렸는데, 우리 소속 노조가 6000명의 군화발에 짏밟히다 보니,
공안정국, 노동탄압, 대화부재등이 현실로 와닿는 것 같다.
철도노조 부위원장을 감싸 안아준 조계종에 이어 유신독재에서도 빛을 발휘했던 천주교
정의 구현사제단이 앞장서서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 민주주의 퇴보를 걱정하는 미사를 올려주니,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13. 합법 파업에 구속영장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경찰에 체포다안 천안 기관차 승무지부장과 서울 고속 기관차 승무지부장에게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고 한다. 참 잘된 일이다.
사실 우리가 파업하면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무조건 불법파업으로 만드는게 정부와 사측이다.
불법이 아니라고 하면 들어올때까지 그냥 놔둬야하니까 안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민영화라는 국가의 정책을 갖고 파업을 했으므로 불법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필수 공익요원(근무자 50%이상을 근무시킴)을 두면서 몇달전부터 예고하고,
한 파업이다. 파업은 종료되었는데, 민노총 침탈에서 쪽팔림을 몸소 겪은 경찰에서는
체포영장으로 잡는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하였는데, 이번에 연속으로 법원에서 기각되었단다.
법원의 판단으로는 이시점에서 증거인멸을 위해 달아날 여지가 없다고 보여진다며, 기각했는데,
사실 맞는 이야기 아닌가? 왜 쓸데 없이 구속하여 뭘 수사하겠다는건가?
민영화하면 공기업이 아니고 처절한 생존경쟁에 시달릴 것은 뻔한 노릇이기에, 위원장의
명령을 받아서 함께 파업한게 죄가 될수가 없다. 법원의 구속영장기각은 마땅하다.
14. 안타까운 일은 현실화 되고~~
현재 지부장 그와 함께 근무한 세월이 십여년~~~
침술학을 본격적으로 배우고자 한의대 간다며 고교 수학, 영어, 국어책을 손에
놓지 않던 그는 이번에 다른 몇몇 노조원들의 응원과 부추김을 받아,
사지로 뛰어 들었다. 결국 그의 선택엔 그가 책임져야 한다는 반대급부가 따른다.
이번 파업에 그가 없었으면 아마도 참여부터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 감히 자부한다.
정말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다. 그전에 지부장 하던 사람들은 사실 인간관계나,
리더쉽등이 그렇게 좋지 못했다.
그가 내세운 세가지 원칙이 있다.
가. 함께 갔다 함께 온다!
나. 절대 파업기간에 투쟁기금을 걷지 않는다!
다. 절대 파업기간에 나눠져서 싸우지 않는다!
세가지 원칙을 우리는 지켰다. 물론 4인조의 이탈자가 생긴것은 아니지만~~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민주주의 식으로 파업을 해본적이 없었다.
이렇게 편하게 파업을 해본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앞날을 버리고, 우리와의 의리를 선택했다.
떠나기전 자신의 와이프에게 한 이야기"여보! 이번 파업에서 돌아오기 힘들것 같애!"
그의 와이프"집에서 설겆이나 해요~~"
파업에서 복귀하기전 최종 조합원 총회에서 한 이야기
"이젠 마음 편히 공부(한의과대학)에 매진할수 있어서 좋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우리는 그가 해임정도에서 끝나고 다시 원직 복직 하기를 바랄뿐이다~!
15. 12.9 총파업에 참여한 나는?
아픈 역사! 기억하기 싫은 일도 나의 인생에 한부분이다.
항상 보면 참여하기 싫은 파업! 가기 싫은 파업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였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단체생활을 하는 노조원으로서 안갈수도 없고,
일단 참여한 이상 즐기자! 는 심정으로 즐겁게 지내려고 무척 노력했다.
그러나 사실 10일이상 지나니 노는것과 술마시는 것도 질리기 시작했고,
저녁에 잠을 자려고 누워도 설잠을 자고 새벽녘에 일어나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파업 진행상황을 보게 되었다.
2013.12.9~12.30 이시간은 내 인생에 다시 돌아오지 않은 시간이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연말에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보내야 할 시간!
그나마 집단생활을 안해서 그렇지, 이틀 간격으로 집회가고 집회후 술마시고,
집에와서 술마시고, 사람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다시는 파업을 안했으면 좋겠지만~~지난 2009년 파업때도 다시는 안하겠지~
했는데, 다시 파업하게 되었다.
사실 22일동안 일안하고 파업할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 자체도
행복하다고 생각되어 진다.
내인생에 쓰다면 무척쓴 시기이고, 즐겁다고 하기에는 너무 아닌 시간이었지만
멋진 위원장! 멋진 지부장! 멋진 노조원!들과 함께 한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앞으로의 내삶에 이런 경험을 가지기도 힘들 것이다!
영원히 22일간의 파업과 징계가 따라 다니겠지만 그래도 훌륭하게 잘 치렀다고,
잼있는 시간이었다고 위안을 삼고 싶다.
노사가 화합하여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한국철도공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철도공사여 화이팅! 우리는 노사가 하나입니다!
2014년 1월 3일 금요일 칼럼지기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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