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이야기/전쟁 이야기

1593. 전쟁: 제2차 세계대전 서막& 무조건 항복(4.1 수)

영일만2 2015. 4. 1. 16:26

 

1593. 전쟁: 제2차 세계대전 서막& 무조건 항복(4.1 수)

 

-본 문-

1. 제2차 세계대전

1939년~1945년까지 일어난 전세계에 걸친 전쟁으로

7000만명의 사상자와 엄청난 재산피해를 낸 제2차 세계대전

역사를 알지 못하고는 미래를 향해 나갈수 없듯이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2. 발발 원인

1차대전후  지나친 배상요구를 하는 연합국의 압력에 못이기던 독일!

1929~1933년까지 대공황으로 더욱더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경제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독일에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나치즘이 나타나고,

팽창하는 경제력의 일본또한 대동아 공영권을 내세우며,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좀더 많은

식민지를 요구하게 된다.

국제연맹에서는 만주국을 인정하지 않았고, 일본은 연맹을 탈퇴하고, 독일또한 베르사유체제를

부정하며 제네바회의의 결과에 불만을 품고 국제연맹을 탈퇴한다.

1차대전 참전군인이었던 히틀러는 1차대전 종전후 공산주의 배척으로 지지세력을 모아

나치즘을 결성하며 전폭적인 국민의 지지를 얻게된다.

 

3. 진행상황

초기에는 유럽대륙의 대부분을 독일이 장악한다. 그러나 처칠의 강력한 저항과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섬나라인 영국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일본이 초강대국인 미국의 진주만을 폭격하게 되자 잠자는 거인 미국이 용트림을 하며,

일본과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와 함께 전시체제로 들어간다.

태평양전쟁은 미드웨이 해전을 반격의 계기로 삼게 되며 이후에는 일본이 밀리게 된다.

동유럽에서는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서 독일이 패배함으로서 반전의 계기가 되고,

서유럽에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여 독일은 곧장 패배의 길로 들어선다.

 

3. 참전과 피해상황

제2차 세계대전은 문자 그대로 세계를 전장으로 하고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끌어들인 전쟁이었습니다. 참가국은 연합국측이 49개국, 동맹국측이 8개국이며, 중립국은 스위스 등 6개국에 불과하였습니다.

동원병력 1억 1000만 명, 전사자 2,700만 명, 민간인 희생자 2,500만 명으로, 그 중에서 독 ·소 양국의 희생이 가장 많아 소련의 전사자 1,360만 명,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 2,000만 명, 전인구의 약 1/10, 독일의 전사자 500만 명,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 550만 명, 전인구의 약 1/10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일본의 전사자는 185만 명,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 250만 명, 전인구의 약 1/40이라고 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비교할 때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동원병력수는 약 2배, 전사자는 약 5배, 민간인 희생자는 약 50배이다.

이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민간인의 희생자가 굉장했다는 것입니다.

 

전투병력

민간인

합계

연합군

18,587,000명

25,475,185명

44,062,185명

추축군

5,930,000명

8,587,000명

14,517,000명

↑ 전사자 총계
유태인학살 600만명이 배제되어있다네요.
'제 2차 세계대전 후 각국의 피해상황' - 네이버 지식iN

이것은 나치스의 인종론적 절멸정책에 유래합니다.

민간인의 희생자 가운데 약 600만 명은 유대인인데 이것은 나치스 지배하의 유대인 총수의 약 70%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현대의 전쟁이 민간인을 제외하지 않은 대량 살육전쟁으로 된 데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전쟁비용, 파괴된 재산은 오늘날 물가로 계산을 해 보아도 어마어마한 양이라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최초부터 전쟁 책임의 소재가 명료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국내에서는 파시즘화를 추진하면서 대외침략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연합국은 첫째로는 전쟁범죄인을 단죄하고(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극동 국제군사재판), 둘째로는 일본 ·독일을 점령하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민주화를 꾀하고자 하였습니다.

확실히 파시즘에 대항하는 연합국의 공통된 슬로건은 ‘민주주의’였으나, 자본주의국과 사회주의국과는 그 이해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 차이는 일본 ·독일의 처리를 에워싸고 양 체제의 대립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최대의 피해를 받고 대독전쟁 승리에 최대의 기여를 하였던 소련은, 내외의 사회주의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국제적 발언권을 강화하였습니다.

소련의 지도하에 동유럽 제국은 인민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정치체제를 취하였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오랜 대일 항전에 견디어 낸 중화민국이 5대국의 하나가 되었으나, 국공대립은 내전으로 발전하여 1949년 10월 중국정권의 성립을 보았습니다.

 

4. 일본의 상황

1919년 일본 경제성장률은 년 20%였고, 1914~1921년 최고의 성장률을 달성한다.

1차대전에 휘말리지 않은 미국과 일본이 세계적 국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일본넘들은 2차대전 패전의 잿더미에서 6.25로 인해 또다시 경제성장을 하게된다.

당시 셰계에서 가장 많은 군함과 전투기를 가졌기에 중국을 쉽게 이기리라 생각했지만,

도시는 제압하였으나 농촌은 제압하지 못한다.

전쟁에서 가장필요한 나무와 석유등의 물자가 떨어져가자 2차대전으로 힘겹게

독일과 전쟁을 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인 동남아를 점령하게 된다.

동남아로 가는 길목인 필리핀(미국령)때문에 어렵게 되자 하와이를 급습하게된다.

 

5. 간단한 전쟁 분위기

영국,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폴란드가 독일의 침략을 받자 영국,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서 2차대전이 개막하게되고, 폴란드 근왕병의 기병과 독일의 기계화부대가

벌판에서 만나 싸웠지만 결과는 뻔했고, 프랑스의 마지노선은 독일의 베네룩스 3국 우회

공격으로 무용지물이 되어 순식간에 파리까지 점령당하고 괴뢰정부인 비씨 정부를

남프랑스에 설립한다.

일본은 중국과 미국과 싸우고, 독일은 영국과 소련과 싸우고 이원화된 전쟁터!

 

6. 아돌프 히틀러

독일의 정치가 이며 독재자로서 1933년 독일 수상이 되었고, 1934년 국가원수가 되었으며, 총통으로

불림 1945년 애인인 브라운과 더불어 자살을 함

친위대는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아돌프 히틀러를 호위하는 당으로 1925년에 창설되었다.

그의 명언?

가. 대중은 지배자를 기다릴뿐, 자유를 주어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나. 국민을 다스리는데는 빵고 서커스면 된다.

다. 국력은 방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침략에 있다.

 

7. 공산주의자들의 박멸

안타까운 것은 서부전선이 지리멸멸해지자 독소 불가침조약을 깨고 공산주의를 없애려던

히틀러의 계획이 스탈린 그라드 포위작전이 실패로 이어지며 독소전쟁 패배한 것이다.

이로 인해서 동유럽이 모조리 공산주의국가가 되었고, 중국까지도 공산당의 국가가 된것이다.

이후 1990년대까지 이어진 냉전은 여기저기서 마찰이 지속되었다.

독소전쟁중 소련과 일본사이에 불가침조약이 맺어져 시베리아에 있는 몇개군단을 동부전선으로

이동시켜 월동력이 우수한 시베리아 군사들이 독일 군을 상대하여 이김으로서 독소전쟁은

독일의 패배로 일단락되었는데, 일본이 시베리아로 조금의 군사력만이라도 투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처칠, 스탈린, 루즈벨트와의 회담에서도 합의하였지만 내심 거의 미국과 영국등의 연합국이

다 이겨놓은 게임 뒤에서야 나타나서 동유럽이나, 일본 북방4개섬, 조선 북쪽등을 해먹은

소련놈들은 참 약았다고 생각이 든다.

 

8. 원자폭탄투하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상륙작전에서 워낙 많은 미군이 사상하여 미국군부와 정계에서는

일본 본토를 공격하면 어마어마한 병력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하여 루즈벨트때 성공한 원자폭탄을 트루먼은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했으며, 이틀뒤 얄미운 소련놈들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쪽으로 넘어와

조선반도로 진입하였다. 또한 발의 원자탄이 나가사끼에 터지자 정신차린 일본 천황과

정, 군계에서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미주리 함상에서 맥아더 장군앞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하기에

이르른다.

 

9. 결과

2차대전 결과로 가장두드러진 특징은 동서간의 냉전체제가 구축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패전국의 영토와 국민에 대한 피해가 눈에 들어났다.

 

10. 전쟁 경과

cf) 제 2차 세계대전 연표(from WIKIPEDIA)
출처로 가기

1939년

  • 9월 1일 - 독일, 폴란드 침공. 제2차 세계대전 발발. 9월 3일 - 영국-프랑스, 독일에 선전 포고. 9월 17일 - 소련군, 폴란드 침입. 9월 27일 - 독일, 바르샤바 점령. 항전에 참여한 폴란드인을 체포함. 9월 28일 - 독일-소련 경계 설정, 우호 조약으로 폴란드 분할. 소련, 핀란드에 영토 통과를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11월 30일 - 소련, 핀란드 침입(겨울전쟁). 영국과 스웨덴이 핀란드를 지원함.

1940년

  • 3월 12일 - 겨울전쟁 종료 4월 9일 - 독일, 덴마크를 점령하고, 노르웨이 침략(베저 작전). 5월 10일 - 영국, 윈스턴 처칠 거국내각 수립. 5월 11일 - 독일, 프랑스 전역 개시. 베네룩스 공격 개시. 룩셈부르크 항복 5월 15일 - 네덜란드, 독일에 항복. 5월 28일 - 벨기에, 독일에 항복. 6월 4일 - 영국-프랑스군, 됭케르크 철수 작전 성공 6월 10일 - 노르웨이, 독일에 항복. 이탈리아, 프랑스에 선전 포고. 6월 14일 - 독일군, 파리 입성. 6월 22일 - 프랑스, 독일에 항복. 7월 19일 - 미국 해군대확장법 제정. 8월 1일 - 히틀러, 영국 침략 준비 명령(바다사자 작전). 영국 항공전 개시 8월 6일 - 소련,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합병 9월 27일 - 독일, 이탈리아, 일본. 추축국에 조인. 12월 18일 - 히틀러, 대소작전 준비 명령.

1941년

  • 1월 6일 -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4개의 자유" 연설 3월 11일 - 미국, 무기대여법 제정. 4월 6일 - 독일, 유고슬라비아 침공 4월 17일 - 유고슬라비아, 독일에 항복. 4월 17일 - 독일, 그리스 침공. 4월 23일 - 그리스, 독일에 항복. 크레타 섬까지 빼앗김. 5월 6일: 스탈린, 인민위원회의 의장에 취임. 5월 10일 - 독일 부총통 루돌프 헤스, 영국과 화평을 추진하기 위해 영국으로 비행기를 직접 몰고 날라 가지만, 영국으로부터 전쟁 포로 취급을 당하고 체포됨. 6월 22일 - 독일, 소련 공습. 8월 12일 - 미국과 영국 정상회담, 대서양 헌장 발표. 9월 24일 - 소련 등 15개국, 지지 표명. 10월 - 독일, 모스크바 공략 실패. 11월 - 독일, 이집트와 중동 국가들을 침공.
    • 이집트는 점령당하였으며 이란, 사우디아라비아는 나치 독일에 선전 포고하였다. 터키는 중립을 취하여 국민을 보호할 수 있었음. 이라크 왕국은 추축국에 가담. 그 도중에 이탈리아에 점령당하였던 에티오피아 제국이 추축국에 선전 포고하였다.
    12월 7일 - 소련, 독일에 반격. 일본, 하와이 공습. 12월 9일 - 중화민국, 전 추축국에 선전 포고. 12월 11일 -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에 전쟁 선포.

1942년

  • 1월 1일 - 연합국 26개국, 워싱턴에서 공동 선언 조인. 1월 20일 - 독일, 반제회의에서 유대인을 학살하기로 결정. 6월 30일 - 에르빈 롬멜 지휘 하에 독일-이탈리아군이 엘 알라메인에 도착. 8월 16일 - 미.영.소 군부, 모스크바 회담. 소련, 제2 전선 요구. 미-영군, 북아프리카 상륙 작전 (토오치 작전) 결정. 9월 13일 - 독일군, 스탈린그라드 시내 돌입. 11월 8일 - 미-영군, 북아프리카 상륙.

1943년

  • 1월 25일 - 미국과 영국,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무조건항복원칙 발표. 1월 31일 -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 승리. 5월 13일 - 북아프리카의 독일-이탈리아군 항복. 6월 10일 - 코민테른 해산. 7월 10일 - 미국과 영국 연합군, 시칠리아 섬 상륙. 7월 25일 - 무솔리니 실각. 왕정 복고, 바돌리오 내각 성립. 8월 24일 - 미.영 수뇌, 퀘벡 회담. 제2 전선 결정. 9월 3일 - 이탈리아, 연합국에 항복. 9월 8일 - 독일, 로마 점령. 9월 15일 - 무솔리니 구출, 파시스트 공화 정부 수립. 10월 13일 - 국왕과 바돌리오정부, 남쪽으로 도피. 독일에 선전포고. 10월 19일 -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3국 외상 회의. 11월 26일 - 미국, 영국, 중국 카이로 회담. 한국 독립 결의. 11월 28일 - 미국, 영국, 소련, 테헤란 회담. 소련의 대일 참전 토의. 12월 1일 - 카이로 선언 발표.

1944년

  • 1월 20일 - 소련, 레닌그라드 해방. 5월 13일 - 독일군, 크림 반도에서 후퇴. 6월 4일 - 이탈리아 전선의 미국 및 영국군, 로마 해방. 6월 6일 - 역사상 최대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돌입. 7월 20일 - 독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발생 7월 22일 - 연합국 45개국, 브레턴우즈 협정을 맺고, IMF와 IBRD 설치. 8월 1일 - 폴란드의 바르샤바 봉기 발발 8월 24일 - 루마니아 국왕이 연합국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함. 8월 25일 - 연합군, 파리 해방. 루마니아, 독일에 선전포고. 8월 26일 - 불가리아, 동맹국에 빠져나와 중립 선언. 9월 2일 - 핀란드, 독일과 국교 단절 (사실 만네르헤임 장군은 히틀러의 간섭을 싫어하였다고 한다) 9월 9일 - 샤를르 드골, 임시정부 수립. 불가리아, 조국전선정부 수립. 9월 10일 - 불가리아, 연합국으로 전환. 독일에 선전포고. 9월 19일 - 핀란드, 영국 및 소련과 휴전 협정 조인. 10월 9일 - 영국과 소련 군부, 모스크바 회담. 발칸 분할에 대해 의견 일치. 10월 11일 - 헝가리의 지배자 호르티가 소련에 항복(나중에 호르티는 독일군에 감금되어 나중에 소련군이 그를 풀어 주게 되었다). 12월 10일 - 소련군과 티토의 군대가 베오그라드를 해방. 12월 31일 - 헝가리, 연합국으로 전환. 독일에 선전포고.

1945년

  • 1월 17일 - 소련군, 바르샤바 해방. 2월 11일 - 미.영.소 군부, 얄타 회담. 4월 12일 -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죽자 해리 S. 트루먼이 대를 이음. 4월 13일 - 소련군, 빈 해방 4월 22일 - 소련군, 베를린 돌입. 4월 28일 - 베니토 무솔리니 총살됨. 4월 30일 - 히틀러 자살. 칼 되니츠가 아돌프 히틀러의 유언에 따라 총통직을 계승함. 5월 7일 - 독일군, 서방연합군에 항복. 5월 8일 - 독일군, 소련군에 항복. 6월 26일 - 국제연합헌장 조인. 7월 17일 - 포츠담 회담. 7월 27일 - 영국에서 애틀리 내각이 성립. 8월 6일 - 미국,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 8월 8일 - 소련, 일본에 선전 포고. 8월 9일 - 미국,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8월 15일 - 일본 천황, 무조건 항복 발표. 한국 독립.

 

 

2015. 4.1 수요일 칼럼지기
****************************************************************








































**********************무조건 항복*****************************